계약금을 나눠 주고받기로 한 매매에서 매도인이 이렇게 주장한 사건이 있다.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지급받은 금원의 배액을 상환하고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문이 허용하는 범위
근거 조문은 민법 제565조다. 매매 당사자 일방이 계약 당시 계약금·보증금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교부한 때에는, 다른 약정이 없는 한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 교부자는 이를 포기하고 수령자는 그 배액을 상환하여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한다. 2025년 1월 31일 시행 조문 기준이다. 해제가 가능하다는 것까지는 맞는 말이다. 갈리는 지점은 ‘무엇의 배액인가’와 ‘언제까지인가’다.
대법원이 본 사건
대법원 2015. 4. 23. 선고 2014다231378 판결의 사실관계는 이렇다. 2013년 3월 25일 매매대금 11억원에 계약을 맺으면서 계약금 1억 1,000만원 중 1,000만원은 계약 당일, 나머지 1억원은 다음 날 송금하기로 약정했다. 매수인은 당일 1,000만원을 보냈다. 매도인은 다음 날 중개사에게 해제를 통보하고 자신의 은행계좌를 폐쇄했고, 3월 27일 “수령한 계약금 1,000만원의 배액인 2,000만원을 공탁하고 계약을 해지한다”는 통고서를 보냈다.
대법원은 매수인이 계약금 1억 1,000만원을 전부 지급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매도인은 그 배액을 상환해야 해제할 수 있다고 봤다. 이어서 “설령 1,000만원만 지급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론은 같다며 두 가지를 덧붙였다. 하나는 계약금 일부만 먼저 주고 잔액은 나중에 주기로 약정한 경우 잔금이 지급되지 않는 한 계약금계약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 임의로 주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는 것(대법원 2007다73611 참조)이고, 다른 하나가 해약금의 기준 금액 문제다.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수령자가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해약금의 기준이 되는 금원은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판결은 이유도 적는다. 실제 받은 돈의 배액만으로 해제할 수 있다면 일정 금액을 계약금으로 정한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고, 받은 금액이 소액일수록 사실상 자유롭게 계약을 깰 수 있어 계약의 구속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다만 이 판결이 ‘약정 계약금의 배액을 상환하면 해제된다’고 판시한 것은 아니다. 받은 돈의 배액으로는 해제되지 않는다는 데까지가 판단이다.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와 ‘상환’의 방법
시한 쪽은 대법원 1993. 1. 19. 선고 92다31323 판결이 정리해 두었다. 해제권 행사 시기를 이행 착수 전으로 제한한 취지는 이미 비용을 들이고 계약 이행을 기대하게 된 상대방의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막는 데 있고, 이행기의 약정이 있더라도 이행기 전에는 착수하지 않기로 하는 특약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행기 전에도 이행에 착수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같은 판결은 순서가 뒤집히는 경우도 짚는다. 매도인이 먼저 해제 의사표시를 하고 일정 기한까지 해약금을 받아 가라고 최고한 뒤라면, 중도금 지급기일은 매도인에게도 기한의 이익이 있다고 보아 매수인이 이행기 전에 일방적으로 중도금을 넣더라도 매도인의 해제권 행사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상환’의 방법에 대해서도 기준이 있다. 해제하려는 매도인은 계약금의 배액을 제공해야 하고, 그 제공이 적법하지 못했다면 해제권을 보유하는 기간 안에 적법한 제공을 한 때 계약이 해제된다. 배액을 공탁하는 경우에는 공탁원인사실에 해제 의사가 포함된 것으로 보아, 상대방에게 공탁통지가 도달한 때 해제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본다.
이 판결들이 답하지 않는 것
민법 제565조는 “다른 약정이 없는 한”을 전제로 한다. 계약서에 해제와 위약금을 따로 정해 두었다면 그 조항이 먼저 읽힌다. 2014다231378 사건에서도 계약서 제5조와 제6조가 해제와 손해배상을 각각 정하고 있었고, 법원은 계약금계약과 손해배상액 예정을 성격이 다른 것으로 다뤘다.
또한 위 판결은 매매계약에서 계약금 일부가 지급된 사안이다. 계약서 작성 전에 오가는 이른바 가계약금은 사실관계와 약정 내용이 사건마다 달라 같은 결론이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 계약서에 계약금 총액이 얼마로 적혀 있는지가 먼저 확인할 숫자다.
